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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4-22

4월 말, 나는 인생 처음으로 ‘요리’의 가치를 재정의하게 되었다.

요리는 사회적 활동이다

엄청난 뒷북이지만 넷플릭스 시리즈 ‘흑백요리사’를 보면서 요리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이전에는 내가 요리를 못하는 이유가 만족의 역치가 낮고 게으르고 성질이 급해서라고 생각했다. 그것도 맞지만 흑백요리사가 그보다 더 정확한 이유를 알려주었다. 요리사들이 음식에 엄청난 정성을 쏟는 모습을 보면서 ‘과연 저 사람들도 평생 누군가에게 대접할 일 없이 혼자 요리해서 혼자 먹었다면 저 수준에 이를 수 있었을까?’ 란 생각을 했다. 내가 항상 낮은 수준의 요리에서 그쳤던 것은, 여지껏 누가 해준 음식만 받아먹고 살아서 누군가에게 내 요리를 대접할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요리란 단순히 ‘음식을 물리/화학적으로 변형하는 행동’을 넘어서 사회적 활동이기도 했던 것이다. 이제부턴 오로지 ‘가족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요리를 하기로 했다. 그런 명분이 없다면 내가 귀찮음을 무릅쓰고 요리를 할리가 없다.

미각적 도파민 디톡스

시청각적 도파민 디톡스가 숏폼을 끊는 것이라면 나는 미각적 도파민 디톡스를 하기로 했다. 그 계기는 이렇다. 4월 셋째주 들어 뭔갈 끊임없이 먹거나 마시지 않으면 다른 것에 집중할 수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 시리얼을 사서 우유도 없는데 이틀만에 다 씹어먹어 버린 적도 있다. 파스타나 볶음밥을 두 번에 걸쳐 먹으려고 2인분을 만들어 놨는데 한 번에 다 먹기도 했다. 이건 배고파서 먹는 게 아닌 심리적인 이유였다. 심지어 그렇게 먹는 음식이 더이상 맛있게 느껴지지도 않았다. 과도한 인풋에 익숙해진 나머지 공백을 참지 못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소비하는 기계처럼 살다가는 건강도 돈도 버리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위의 결론에 더해서, ‘(1) 창의적이고 건강한 음식을 (2) 한 번에 한 끼 분량만 만들어서 (3) 청중에게 보여주고 먹자’ 라는 다짐을 했다.

4월 22일, 계란찜

  • 재료: 계란 2개, 물 조금, 쪽파 1개, 김치 조금
  • 조리법
    • 냄비에 물이랑 계란을 넣고 섞은 후 중불로 끓인다.
    • 뭉치기 시작하면 파와 김치를 넣고 뚜껑닫고 약불.
    • 약 5분정도 후 완성.

쪽파는 네토에서, 김치는 DM에서 구햇다. 엄청 자잘해서 김치라기보단 김치 고명이다. DM에 은근 식재료가 많다. 잡곡도 다양하게 판다. 김치가 떨어지면 독일판 김치인 사우어크라우트로 대체하면 된다.

두 번째 시도는 항상 처음보다 낫다. 물을 좀 더 넣었더니 촉촉해졌다.

4월 23일, 잡곡김치파죽

기숙사에서 주운 밥솥의 ‘죽’ 기능을 사용해서 불린 잡곡과 쌀로 죽을 만들었다. 여기까진 밥냄새가 매우 좋았다. 김치도 넣었다. 여기까지도 좋았다. 생파를 투입한 것이 문제였다. 국밥에다가 파 왕창 집어넣던 기억에 그냥 넣었는데 파맛이 이렇게 셀 줄 몰랐다. 끔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