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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4-18

자취도 처음, 해외 생활도 처음, 요리도 처음이었다. 한 달 반쯤 지난 현재까지의 나의 요리를 기록해보려고 한다.

만족의 역치가 낮아서, 즉 너무 쉽게 만족해서 내가 요리를 못하는 것 같다. 생으로 먹어도 맛있어서 시간을 더 들일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그것은 요리의 효율이 떨어지기 때문이고, 요리를 많이 해서 효율성이 올라가면 요리를 하게 될 것이라고 친구에게 들었다. 결핍을 느껴야 시도를 하는데 나는 결핍을 좀처럼 느끼지 못한다. 그래서 시도하지 않는다. 그래서 요리의 효율이 아주 느리게 올라간다. 그래도 느리게라도 발전을 하긴 한다.

3월 5일, 냉동 슈니첼

후라이팬에 해바라기 기름(Sonnenblumen Öl)을 두르고 슈니첼을 넣고 달궜다.

3월 9일, 냉동 파스타

그렇다, 딱 봐도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뭐가 잘못된 건지는 모르겠다. 역시나 후라이팬에 내용물을 넣고 달군 것이다. 어쩌면 잘못된 것이 아닐 수도 있다. 맛은 괜찮았기 때문이다. 혹시 포장지가 거짓말을 하는 거고 원래 이런 색깔이 되나 리뷰를 찾아봤다. 이상하게도 대부분의 리뷰가 입을 모아 버섯에서 화학적인 냄새가 난다며 혹평하고 있었다. 다시는 FroSTA 제품을 사지 않겠다는 극단적인 리뷰도 기억난다. 하지만 색깔에 대한 언급은 찾아볼 수 없었다. 어쩌면 냉동식품인데 내가 냉장고에 며칠동안 보관해서 그런 걸지도 모른다.

3월 13일, 냉털국

‘냉장고 털이 국’의 줄임말이다. 냉장고에 그때그때 뭐가 있느냐에 따라서 배리에이션은 무궁무진하다. 조리법은 물을 끓이고, 코인육수를 넣고, 만두든 부어스트든 감자든 계란이든 채소든 있는 걸 다 넣고 끓이면 된다. 맛있었다. 독일에서 만든 첫 요리같은 요리라서 더 감동적이었다.

저 네모난 만두에는 서사가 있다. 내가 한국에서 코인육수를 챙길 때 그렸던 그림은 냉동만두를 사서 쉽게 끓여 먹는 것이었다. 냉동만두를 찾기 위해 켐튼의 마트와 아시아 마트를 뒤졌지만 찾을 수 없었다. 비비고 웹사이트에 들어가니 독일에서 비비고 제품을 파는 마트의 리스트가 나와 있길래 그 중 켐튼에 있는 V-markt에 버스를 타고 갔다. 1층짜리 꽤 넓은 마트였다. 냉동식품 코너를 10번은 다시 본 것 같은데 비비고 만두는 없었다. 그래서 최대한 비슷하게 생긴 것을 샀다. 한국의 평범한 냉동만두에 부어스트 냄새를 첨가한 맛이 난다.

3월 15일, 하이디라오 냉털국

같은 플랫에 사는 중국인 친구가 하이디라오 소스를 줬다. 그래서 이번에는 코인육수 대신 그 소스를 넣고 끓였다. 차이점은 그게 다다. 그 친구에게는 나중에 보답으로 코인육수를 줬다. 토마토 수프 또는 보르쉬 맛이 났다.

3월 18일, 신라면

뮌헨 고아시아 가서 산 신라면을 네모 만두와 함께 끓여 먹었다. 감동적인 맛이었다.

3월 20일, 감자

냉장고에 있던 감자에서 싹이 났다. 기하학적인 모양으로 겉을 잘라내고 한 끼에 6-7알씩 삶아 먹어서 없앴다. 맛있었다.

3월 21일, 야채 냉털국

상해가는 것은 감자뿐이 아니었다. 기숙사 입주 극초반에 산 각종 채소들이 시들어가고 있어서 일분 일초가 급했다. 이제서야 진정한 의미의 냉털국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아일랜드가 가난하던 때, 좀 여유 있는 주변 나라는 곡식을 갖고 다양하게 빵을 구웠지만 아일랜드에서는 빠르게 배를 채우는게 목적이라서 다 물에 넣고 끓였다는 게 생각났다.

3월 23일, 팔도비빔면

뮌헨 고아시아에서 샀던 팔도비빔면을 먹었다.

3월 25일, (유사)간장계란밥

냄비에 밥을 짓고, 계란후라이를 하고, 간장을 뿌려서 먹었다. 냄비 밥이 제대로 익지 않아서 쌀알이 딱딱하게 씹히는게 나름대로 맛이 있었다. 간장이 제대로 섞이지 않아서 어느부분은 짜고 어느부분은 생밥인 게 나름대로 재미가 있었다.

그 다음날인 3월 26일, 우리 플랫 주방에 앉아 무심코 위를 올려다보았다. 놀랍게도 선반 위에 밥솥이 있었다. 그렇게 나는 입주 한 달만에 이름 모를 한국인이 남기고 간 밥솥을 발견했다. 밥솥의 표면은 오래 방치된 듯 찐득찐득하게 오염되어 있었다. 정성스럽게 닦아서 사용하기 시작했다.

3월 27일, 간장계란밥

처음으로 밥솥으로 지은 밥으로 요리를 했다. 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계란 두개 넣고, 밥을 넣고, 진간장을 넣고 섞었다. 3월 25일의 간장계란밥과 비교하면 엄청난 발전이 아니라고 할 수 없다.

3월 28일, 볶음밥

기세를 몰아 오이, 당근, 가지를 사와서 위와 똑같은 방법으로 볶음밥을 했다.

4월 1일, 볶음밥 2

기름을 넣고 바로 계란을 깨는 것이 아니라 팬이 충분히 뜨거워진 다음에 넣어야 팬에 계란이 엉겨붙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하고, 처음보는 예쁜 계란의 모습에 감명받아 사진으로 남겼다.

그리고 또 볶음밥을 만들어 먹었다.

4월 12일, 볶음밥 3

…그리고 5박 6일간의 베를린 여행을 갔다 오자 당근의 절반이 썩어 문드러져 있었다. 멀쩡한 부분만 살려 마지막 볶음밥을 만들엇다. 똑같은 볶음밥이 아니다. 무엇이 달라졌을까? 야채의 모양이다. Netto에서 야채를 얇게 써는, 칼날이 달린 판때기 같이 생긴 도구를 2-3유로에 샀다. 이제 귀찮고 시끄러운 칼질과 작별이다.

4월 14일, 불닭볶음면 사우어크라우트 김치

김치맛 불닭볶음면을 받았다. 먹고 남은 양념을 버리기가 아까워 저번에 뭔지도 모르고 사봤던 사우어크라우트를 말아 보았다. 놀랍게도 묵은 김치 맛이 났다!

4월 15일, 바질 페스토 파스타

마트에서 스파게티 면과 바질페스토 소스를 샀다. 스파게티 면은 8분 정도 끓이고 소스를 비비자 순식간에 그럴듯한 스파게티가 완성되었다. 맛있었다.

4월 18일, 사우어크라우트 간장 파스타

싹 난 감자와 짓무른 당근, 두 번의 사고를 겪은 후 나의 냉장고는 매우 미니멀한 상태에서 새로운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한정된 재료를 가지고 뭔가 창의적인 음식을 만들어 보고 싶었다. 현재 내가 가진 것은 스파게티면, 사우어크라우트, 기름, 진간장.

면발을 삶고, 기름을 두른 냄비에 사우어크라우트와 진간장을 넣고 섞는다. 그리고 합친다! 상당히 먹을만한 스파게티가 되었다. 사우어크라우트는 김치라고 생각하고 먹으면 김치같을 정도로 김치같다. 그리고 건강에도 좋다고 한다.

앞으로의 계획

다시 쌀을 사서 당분간은 볶음밥 쪽을 더 연구해보고 싶다. 네토에 있는 모든 채소를 한 번씩은 넣어 보는게 목표이다. 간장이 떨어지면 다른 소스들을 시도해 볼 예정이다.

다음편: 5월 요리 발전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