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상적인 개념을 구체화하기
20살 때 대학교에 처음 와서 강의에서 뭔가 획기적으로 느껴지는 말을 들었을 때 그 강의를 안 들은 사람에게 그걸 그대로 내뱉으면 전달이 전혀 안되는 안타까움을 느꼈다. 어떤 자기계발서에서 나쓰메 소세키의 ‘그 후’의 일부분을 인용한 것을 읽었다.
“아버지는 논어니 왕양명이니 하는 금덩어리를 그냥 그대로 받아들이시니까 그렇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금덩어리라는 건… … .”
다이스케는 잠시 말없이 있다가 겨우 이렇게 말했다. “덩어리 그대로 나오는 겁니다.”
이것을 읽고 내가 금덩어리를 소화시키지 못한 채 그대로 뱉어서 그렇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저학년 때 발표 관련 교양수업을 수강했는데 교수님이 이렇게 말했다. “말이 너무 추상적이에요.” 그 이후로 내가 구사하는 언어에서 추상적인 말을 최대한 검열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니 일단 좀더 애매모호함이 걸러진 발표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구체화한 것을 다시 추상화하기
그러다가 ‘구체화시킬 줄 안다는 것은 다시 추상화시킬 줄도 안다는 것’임을 깨달았다. 그 계기 중 하나는 원본을 못 찾겠는데 어떤 개념에 대해 설명할 때 초보 프로그래머는 잘 몰라서 ‘데이터가 슝 가서 딱 나와요’ 같이 추상적으로 설명하고, 중간 연차의 프로그래머는 지식이 많이 쌓여서 모든 구체적인 절차를 일일히 거론하며 설명하고, 그걸 다 통달한 고수의 설명은 다시 ‘데이터가 슝 가서 딱 나와요’로 돌아간다는 내용의 짤이었다. 또 다른 계기는 노마드코더 영상에서 들은 ‘개념을 이해하려면 5살도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보라’는 말이었다.
또한 이런 말을 들었다. ‘지식은 안쪽으로 향하고, 지혜는 바깥으로 향한다.’ 무슨 뜻인지 생각해 보았다. 지식은 인풋이고, 지혜는 아웃풋이다? 지식은 말해봤자 자기가 인풋한 것을 반복하는 것밖에 안될 때라서 남들에게 아웃풋으로 인정되지 않고, 지혜는 안에서 추상화 과정을 거쳐 새로운 것이 나오기 때문에 남들에게 아웃풋 즉 새로운 지식으로 인정되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여름에 토플공부하다가 paraphrase라는 개념을 난생 처음 알았다. 근데 한국어로 그걸 번역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찾아봤더니, 한국어는 보통 paraphrase하지 않기 때문이란다. 문법적 이유로 영어랑 차이가 있어서. 근데 영어는 학생들한테 글짓기시킬때부터 paraphrase를 강조하며, paraphrase를 잘하는 사람이 글 잘쓰는 사람이라는 게 보편적으로 통용된다고 한다. 흥미로웠다.
교환학생 면접때문에 영어 스피킹 연습하다가 engfluent의 이 영상을 봤는데, 영어 영상을 보고 나서 자기 말로 바꿔서 내뱉는 연습을 소개하는 영상이었다. 그런데 자기 영상을 몇년후에 자기가 부정했다. 초보자들은 영어를 흡수하고 그걸 자기말로 뱉는게 어렵다고. 그게 바로 paraphrasing이었다. 초보자라면, 영어를 들었을때 바로 따라 뱉는거(섀도잉)밖에 못하겠지만, 그 단계를 넘어선다면 언어를 들었을때 머릿속에서 프로세싱을 해서 추상화를 하고, 그 개념을 또다시 내 언어로 프로세싱해서 뱉는거 즉 Paraphrasing이 될 것이다.
결론
처음 학습할 때 추상적인 개념이 구체화된다. 그리고 구체화한 것을 다시 추상화할 때 학습이 완성된다. 그렇게 추상적인 것을 또다른 추상적인 것으로 바꾸는 것이 paraphrasing이다. 그래서 paraphrasing을 할 수 있어야 그 개념을 이해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