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앱 옮겨다님의 역사
나는 유치원 때 일기장에 그림일기를 쓰기 시작한 이래로 지금까지 쭉 일기를 써왔다. 삭제하지 않고 한 곳에 축적하기 시작한 건 2020부터. 메모 앱을 참 많이도 옮겨다녔다.
메모앱을 옮기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었다.
- 초등학교 때, 폰을 바꾸는데 메모 옮기는 법을 몰라 강제적으로 이동함
- 초등학교 때, 실수로 메모를 포맷해 버리는 사고를 겪음. 이때 며칠동안 후회와 절망에 사로잡혀 잠도 안오고 밥도 안 넘어갔다. 트라우마를 안고, 삭제가 한 번에 되지 않는 메모앱으로 옮겼다. (과연 그 메모앱이 정말 백업방법이 없는 앱이었을까?)
- 중학교 때는 기본 메모앱에 뭉탱이로 쓰고 뭉탱이로 삭제하는 것을 반복했다.
- 고등학교 때 어느 순간 문득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기록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어 일기를 축적하기 시작했다.
에버노트 시대(2021-2023)
에버노트를 쓸 당시 일기앱으로 쓸만한 앱의 기준은 다음과 같았다.
- 모바일로 접속, 쓰기, 읽기, 검색 편리
- 오프라인 접속 가능, 하지만 동기화는 빨리빨리 되어야됨
- 옆으로 누워서 사용하기 편함(화면 자동 회전되면 안됨)
- 읽기 경험을 어떤 방식으로든 해치거나 예측을 빗나가지 않는 타이포그래피와 이외의 디자인
- 영구삭제가 어려움, 그렇지만 삭제하면 확실히 내 눈앞에서 사라져야 함.
- 잠금 기능, 그렇지만 너무 풀기 어려우면 안됨
- 계정은 있어야 함, 그러나 너무 강하게 연결된 느낌이면 안됨
- 무료여야 함. 돈까지 내긴 싫음. 하지만 무제한 노트생성 가능과 함께 내가 원하는 모든 기능이 있어야 함.
등등?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다른 요소들도 있다. 이렇게 까탈스러운 조건을 들이밀면 충족하는 앱은 거의 없다.
에버노트는 내가 쓰는 동안만 해도 꽤 여러번 업데이트가 되었고 기능과 디자인이 바뀌었다. 물론 마지막 모습보다 이전의 버전에 대한 기억은 하나도 없지만. 그때마다 새로운 기능과 디자인에 적응해야 했지만 크게 어렵지 않았다. 일기를 쓰는 행위와 읽는 행위는 지금은 안그렇지만 당시에는 중요도가 큰 루틴이었고 나에게 안정감을 주어야 했다. 그것이 내가 일기 앱의 디자인에 있어서 모험을 꺼렸던 이유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꽤 오래 사용했던 에버노트를 떠나기 어려웠던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1-2년쯤 전 에버노트를 떠났다. 이유는 구체적으로 기억이 안 나지만 내가 사용하던 일기앱을 버렸다는 건, 정말로 봐주고 봐줘도 못 써먹을 수준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지 않은 이상 내가 일기앱을 바꿀 리가 없다.
기억나는 건
- 광고가 너무 많아졌다
- 모바일에서 계속 자동회전이 되고 그걸 막을 방법을 제공하지 않는다
- 모바일에서 무한로딩 에러가 잦아졌다
- 노트 저장이 느려졌다
- 노트 충돌? 에러가 잦아졌다
- 무료 플랜 노트 50개 제한
에버노트 대체제 찾기를 위한 과도기(2024)
그래서 에버노트를 어떻게 대체할 것인가? 일단 디지털이어야 한다. 초등학교 일기장 이후 쭉 디지털을 고집했던 이유는 디지털 방식이 적은 노력으로 확실한 프라이버시를 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텍스트를 중간에 추가하고 편집하고 삭제하기 편리하다.
원노트 업노트 굿노트 구글독스 깃허브 노션 옵시디언 등등 수많은 노트앱 후보들이 있었고 그중 몇가지는 몇 개월 정도 시험해 보았지만 어떤 것은 계정과의 연관성이 너무 강해서, 어떤 것은 무료버전이 제한적이어서, 어떤 것은 오프라인 접속이 어려워서, 어떤 것은 읽기 어려워서, 어떤 것은 작은 회사라 데이터가 날아가거나 보안이 약할까 두려워서, 어떤 것은 그냥 마음에 안 들어서 같은 끝이 없는 이유가 나와서 적절한 것을 찾을 수가 없었다.
직접 만들자
그래서 결국 내가 만들어야겠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하지만 필요 이상의 노력을 쏟고 싶지는 않았다. 또 내가 일기앱을 사용하는 양상도 전과 달라졌다. 옛날 일기를 읽는 시간이 줄어들었고 일기를 쓰는 시간 또한 줄어들었다. 그래서 일기는 그냥 내가 필요할 때에 예측 가능한 방식으로 정리되어서 거기에 있으면 되었다. 일기앱을 옮겨다니다 보니 이제서야 일기의 껍데기가 벗겨지고 데이터 자체가 눈에 들어온 것 같았다.
그래서 그동안의 전통을 존중함과 동시에 덜어낼 건 확실히 덜어낸 정리 시스템을 만들기로 했다.
전통 존중
- 에버노트를 닮은 디자인 - 키 컬러, 다크모드, 산세리프, 서체 크기, 글줄길이와 행간
- 정리방식 - 달을 기준으로 페이지 나눔, 날짜 포맷은 ‘월.일’, 연도 기준 폴더 나눔, 꿈일기와 보통 일기 분리
덜어낸 것
- localhost로 열기 때문에 모바일 접속을 내려놓았다. 대신 휴대폰의 또다른 메모앱에 버퍼 공간을 마련해 둬서 그곳에 한달치의 일기가 쌓이면 본 저장소로 옮긴다.
- 심화 검색기능: 키워드 검색 기능은 따로 없다. 대신 vscode로 열면 검색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