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an cuna macan ata locs alonlao
Aoir fola vola cuco ola fan nonny nachit
The two of them in love
Whales Tails - Cocteau Twins
Beetles and eggs and blues and bells and eggs and blues
Beetles and eggs and blues and poor little everything else
You steam a lens stable eyes and glass
Not get pissed off through my bird lips as good news
Cherry-coloured Funk- Cocteau Twins
수험생 시절 음악은 단순한 즐길거리를 넘어 심리적 안정을 주는 수단으로 작용했는데 특히 드림팝 장르는 내게 큰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음악을 들을 때 밴드, 앨범, 장르에 대해 찾아보기보단 의도적으로 베일에 감춰둔 채 표면적으로만 즐기는 것을 좋아해서 드림팝이라는 장르에 대해 거의 아는 것이 없었다. 내가 그때 드림팝을 좋아했던 이유는 소리가 아름다워서도 있지만 무엇보다 ‘모호해서’였던 것 같다.
나는 가사가 안 들리는 음악을 좋아했고 만약 들린다고 해도 구체적인 주제, 정해진 청자가 없거나 추상적이거나 자연물인 것이 좋았다. 그리고 언어로서보다는 가수가 발음하는 방식으로서 가사를 받아들였다. 음악사적 맥락 같은 것은 몰랐지만 어째선지 드림팝은 내가 원하는 모호함을 전부 갖추고 있었다. 드림팝은 대부분 보컬이 웅얼거리듯이 발음하고 음악에 묻혀 가사가 거의 안 들렸다. 언뜻언뜻 들리는 단어나 문장이 완전히 개인적인 방식으로 조합되어 이해되곤 했다. 주워 들었던 가사들을 떠올려보면 주어가 없는 문장이 많고, 화자와 청자 모두 명확하지 않고 은유적이라고 느꼈다. 나는 그것을 자유로움으로 인식했던 것 같다.
그 모호함이 정확히 무엇이고 왜 편안했을까? 수험생으로서 처해 있던 외부적 상황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의 경우에는 인생에서 힘든 시기일수록 더 추상적인 음악을 들었는데, 그것은 언어의 제약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욕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추측해 왔다. 외부적 압박이 심할수록 모든 것을 나의 의도와 상관없이 범주화시키는 언어의 제약이 더 강하게 느껴진다는 추측이다.
추상성에 관해 예시를 들자면, 가장 많이 반복해 들었던 Cocteau Twins의 가사는 유독 안 들리거나 잘못된 가사로 들렸다. 심지어 몇몇 부분이 한국어로 들리는 몬데그린 현상도 일어났다. 간간히 영어단어가 들리는데 문장은 말이 안되고 나머지는 왜 외국어 같은지 인터넷 검색도 해 보았는데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콕토 트윈즈의 가사에 의미가 있는지’ 궁금해하는 중이었던 기억이 난다. 실제로 가사의 일부는 외국어였다. 보컬 엘리자베스가 라디오 인터뷰에서 말하길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언어로 쓰여진 책과 사전을 뒤지다가 발견한 단어들을 가사에 사용한다고 밝혔다. ‘자신이 노래하기 전까지는 아무 의미가 없다’는 프레이저의 말처럼 Cocteau twins의 가사는 말도 안되는 단어들의 콜라주이지만 프레이저에 의해 불러지고 악기 연주와 맞물리며 이전에 없었던 새로운 느낌을 생성했고 밴드는 드림팝 장르의 개척자로 불릴 수 있었다.
음악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지만 음악을 형식과 내용으로 분류해 본다면 드림팝은 내용(가사)는 추상적이지만 형식(사운드)적으로는 그다지 추상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 멜로디는 상대적으로 팝적이기 때문이다. 드림팝보다 형식적으로 더 추상화된 것을 찾으라면 드림팝과 밀접한 장르인 슈게이징이 그런 것 같다. 슈게이징 밴드의 라이브 영상을 보면 어둠 속에서 기타 소리를 증폭시키는 각종 기계들로 벽을 쌓아놓은 채 빛과 노이즈라는, 의미가 담겨있다고는 보기 어려운 자연의 형태소로 공간을 꽉 채워 버리는데 ‘감각적인 체험’에 대한 집착이 느껴진다. 더 추상적으로 가면 한 음정을 가지고 길게 늘이거나 음을 정말 미세하게 조절해 미분음을 만드는 드론이 있는데 벌이 날면서 내는 윙윙거리는 소리도 드론의 일종이라고 한다.
추상적인 것은 왜 자연적일까? 자연적인 것은 인간이 의미를 부여하기 전의 상태라는 것이고 언어화되기 전의 더 자잘하게 나눠진 상태라는 것이고 음악에서 구상적이라는게 더 보편적으로 언어화가 되는 것이라면 시각언어와 마찬가지로 청각언어도 구상적인 것보다 추상적인 것의 경우의 수가 더 많을 것이다. 음악가들은 그 무한한 가능성에 매력을 느꼈을 거라고 추측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