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여행 전 독일의 역사에 대해 아주 조금이나마 감을 잡기 위해서 강제수용소 기념관을 방문하기로 했다. 켐튼과 가장 가까운 곳 중 하나가 다하우에 있는 KZ-Gedenkstätte Dachau였다.
Gedenkstätte는 Gedächtnis와 Stätte의 합성어이다.
- denken(to think) → gedenken(to commemorate) → Gedächtnis(memory, the act of remembering)
- Stätte: place, site를 뜻하는 약간 오래된 말. 지리적 장소를 뜻하는 Ort보다 상징적이다.
켐튼에서 2시간 15분 정도 걸리는 길이로, RE나 RB를 탄 뒤 S반 한 번 타고 Dachau Hbf에서 726번 버스를 타면 입구 바로 앞에 도착한다.
- 오디오 가이드: 입구 근처에 데스크, 화장실, 카페, 서점 등이 있는 건물이 있다. 오디오 가이드가 있는데 일반 4유로, 학생이면 3.?유로라고 한다. 10인 이상만 신청 가능하다고 쓰여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현금만 받는다고 쓰여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아무튼 나는 못했다.
- 입장료: 무료
- 가이드 투어: 영어와 독일어로 정해진 시간에 진행한다고 한다. 나는 예상보다 늦게 도착해서 못 들었다.
1933-1944에 ‘정치범’들을 수용하고 강제 노동시켰던 곳이다. 건물은 별로 남아있지 않고, 넓은 공터에 건물 터만 남겨져 있었다. 남아있는 건물들도 그대로 보존된 것은 아니고 수용소가 폐지된 후 다른 용도로도 좀 쓰이다가 갈아엎어지고 메모리얼이 되고 난 후에 재건한 것이라고 한다.
Arbeit macht Frei(노동이 그대를 자유케 하리라) 대문이다. 철창에 새겨진 문구가 하필… 모순의 극치를 보여준다. 이 말 자체는 독일 대중의 평범한 격언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나치가 이 문구를 아우슈비츠와 다하우 대문에 사용했기 때문에 이제는 독일에서 거의 금기시되었다고 한다.
비가 오기 시작했다. 나는 켐튼역에 실수로 우산을 놓고 와서 맞는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도 반은 우산을 쓰고 반은 맞으며 돌아다녔다. 여담이지만 저녁에 켐튼역에 돌아왔을 때 우산이 놓고 간 그대로 놓여 있었다.
얼마 없는 건물 중 하나다.
내부는 전부 재건된 것이다. 넘쳐나는 수용인원이 추가될 때마다 침대 간격은 좁아졌다. 전시에 사용된 자료사진들은 전부 나치가 외부 선전을 위해 깔끔하고 질서 잡힌 모습으로 찍었던 설정샷이라고 한다. 나치는 그 질서란 것에 집착했는데, 수감자들은 정리정돈이라는 명분하에 일어나자마자 침대를 정돈하고 건물을 청소해야 했다. 바닥에 티가 있으면 가혹한 벌을 받을 정도로 엄격했는데, 매우 모순되게도 감염병은 들끓었다.
이렇게 건물이 있었던 곳에는 네모난 터만 덩그러니 자리를 지키고 있다. 비가 오고 흐려서 대기의 존재감이 평소보다 무겁게 느껴졌다.
사진은 없지만 곳곳에 상징적인 조형물들이 있다.
쭉 보다가 우리동네 켐튼이 나와서 놀랐다. 인구가 많아지자 여러 곳에 수용소 분소를 세우고 이주시켰는데, 그 중 하나가 켐튼에도 있었다고 한다.
한 프랑스인이 수용소에서의 경험을 그림으로 그린 것이라고 한다. 중앙의 불타는 마을 그림이 켐튼에 도착한 그가 처음 본 광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