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
obsidian

2024-07-07

줄글이 왜 쓰이는거지?

문장이 글로 쓰인다는 것에 갑자기 이상함을 느꼈다. 줄글은 결국 텍스쳐가 되어 다 똑같아지고, 한눈에 파악할 수도 없다. 스크롤압박이란 말도 있듯이 읽는데 쓸데없이 오래 걸린다. 글을 읽을 때 속발음을 해야만 글이 읽히는 사람도 있다고 들었는데, 그게 문장은 소리내어 말하기 위한 것이고 글로 쓰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증거 아닌가? 문장은 시각에 적합하지 않은 것이 아닌가? 왜 인터넷 문서, 비문학 책, 논문 등 죄다 줄글로 이루어져 있는거지? 라는 의문이 들었다

이런 의문이 오래전부터 있었는지 나는 필기할 때 최대한 압축하려고 했다. 조사도 다 제거했다. 해당 개념에 대해 이해하면 할수록, 더 이상 이해에 필요가 없다고 생각되는 문법요소들을 제거했다. 하지만 며칠 뒤 돌아와서 다시 읽으면 이해가 안 되어서 다시 생각하며 연결고리를 만들어야 했다. 그때는 돌아와서 읽게 되지 않는게 내 의지의 문제며, 연결고리가 끊기는건 자연스러운 것이니, 다시 처음부터 만드는게 맞다고 믿었다.

기말고사 때 c++문법도 그렇게 공부했다. 돌아보니 최악의 방법이었던 것 같다. 노션에다 ‘기말고사’라는 노트 하나를 만들어 놓고, 그 노트 하나에 키워드로 구성된 각 챕터의 필기들을 줄줄이 나열해서 매우 긴 노트가 만들어졌다. 그 필기를 만들 때는 공부가 잘 되는 듯 하였다. 내 딴에는, 무식하게 줄글로 쓰인 문서를 읽고 내가 열심히 생각해서 얻은 지식을 열심히 ‘디자인’한 구조로 압축해 놓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험 며칠전에 다시 돌아와서 보니, 알 수 없는 키워드들의 거대한 리스트일 뿐이었고 의욕이 떨어져 공부를 놓아버렸다.

정보는 연결지어야 지식이 된다는 흔해빠진 말을 이해했다고 착각하고 있었던 거다. 문법요소를 다 지우고 키워드만 남기면, 습득한 지식을 도로 해체해 놓는 것과 뭐가 다른가? 그래도 이런 이상한 고민을 했기 때문에 얻게 된 당연하지만 새로운 깨달음이 있다. 줄글로 정보를 나타내는 이유는 키워드가 아니라 연결하는 문법요소들에 있다는 것이다. 어떤 개념을 잘 이해한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문법요소를 적재적소에 사용해 키워드들을 연결한 줄글을 쓸 수 있을 것이다. 글을 잘 쓴다는게 뭔지 몰랐는데 이제 좀 알 것 같다.

하이퍼텍스트의 보조

그리고 줄글의 선형성이라는 제약을 벗어나기 위한 시도 중 하나가 하이퍼텍스트인 것 같다.

나는 내 노트를 이전에 사용했던 ‘공간을 사용한 키워드 배치’ 방식에서 ‘줄글+하이퍼텍스트’ 방식으로 바꾸기로 했다. 그러면 키워드 간의 구조가 시각적으로 직접 드러나보이진 않겠지만 또 다른 방법으로 존재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