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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4-19

이날도 어김없이 나와서 버스를 기다렸다. 호스텔 바로 앞에 역도 있고 버스정류장도 있어서 너무 편했던 것 같다. 최고의 위치다.

원래 이날이 이동을 제외한 베를린 마지막 날이었는데 이대로라면 계획했던 곳 중 몇 군데를 못 볼 것 같아 하루 더 연장하기로 했다. 베를린에 언제 다시 오게 될지 모르는데, 아니 어쩌면 다시 안 올지도 모르는데 너무 서둘러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논문 과제. 다음날인 8일까지 적어도 3장은 쓰겠다고 팀원한테 큰소리 쳐 놓은 상태였는데, 베를린에 올 때보다 더 여러번 갈아타야 하는 돌아가는 기차 안에서 내가 과연 제대로 쓸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그래서 다음날 베를린 시립도서관에라도 앉아서 편하게 쓰기로 했다.

Grand Hostel은 방이 다 차서 연장할 수 없었다. 그래서 Neohostel이라는, 핫플레이스들과는 좀 거리가 있는 곳에 위치한 호스텔을 예약했다. 그리고 다음 목적지인 소련 전쟁기념비로 향했다.

가는 길에 본 로고들이 마음에 들어서 사진 찍었다.

Plakaieren verboten! 밑에 아이러브 플라카테

  1. 벚꽃인지 뭔지가 피어 있다.
  2. 세종로, 충무로처럼 길이름을 사람이름으로 짓는데 표지판 위에 뭐가 있길래 봤더니 Hans Thoma라는 분은 화가였다고 한다.
  3. 길가다 보면 가끔 보이는 저 ‘Toi Toi’ 육면체가 뭔지 궁금했는데 이동식 화장실이었다. ‘toi toi toi’가 독일어의 행운을 비는 표현이라고 했는데 그걸 의도한 네이밍이겠지?

Soviet War Memorial Treptow

Treptow 공원에 위치해 있다. 공원의 길은 흙바닥이고 운치있는 호수가 있고 새와 다람쥐도 많았다. 동네 주민들이 조깅을 하고 있었다. 이 메모리얼은 나치 독일군을 항복시킨 독일-소련 전쟁과 거기서 전사한 소련 군인들을 기념하는 곳이다.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소련 건축가가 설계했다. 1990년에 독일 통일 허용 협정의 일환으로 독일이 독일 내 전쟁기념비의 유지보수에 책임을 지기로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후로도 유럽 승전기념일에 행사를 여기서 한다고.

Родина не забудет своих героев.

저 양각으로 조각된 돌들이 좌우로 여러개 쭉 나열되어 있는데 옆면에는 스탈린의 명언?들이 금색으로 쓰여있다. 왼쪽 돌들은 러시아어, 오른쪽 돌들은 독일어로 쓰여있어서 나는 읽을 수 없었지만 말이다. 반달리즘 사건도 있었고 다른 소련 선전 기념물과 마찬가지로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기념물 철거 논의가 있다고 한다.

다시 이동해서 DDR Museum으로 가는 도중 본 멋진 동상.

이런 곳인지 몰랐는데 온갖 멋진 건축물과 박물관들이 여기 몰려 있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여기가 Museum Insel이라고 한다.

  1. Humboldt Forum. 앞면은 장식적인 양식인데 옆면은 모던한게 인상적이었다.
  2. Berliner Dom
  3. Altes Museum

DDR Museum

DDR Museum 입구. 입장료는 학생할인 받아서 8유로였다. 티켓을 주는데 이걸 찍고 들어가야 하고 나갈 때도 찍어야 나갈 수 있다. 모르고 전시장 내부의 화장실에 버렸다가 다시 주워와야 했다.

전시는 인터랙티브하고 그래픽이 넘친다. 어린이들에게 특히 좋을 것 같다. 학교에서 단체로 온 것 같은 학생들도 있었다. 장벽 근처의 삼엄했던 경비 시스템, 프로파간다 포스터, 각종 정부기관과 단체들부터 동독 사람들의 직업, 문화생활, 일상생활에 대해 알 수 있다.

  1. 각종 정부기관과 단체들의 로고
  2. 군인들이 쓰던 슬랭. 단어와 단어를 올바르게 매치하면 불이 들어온다. 나는 하나도 못 맞혔다.
  3. 서독으로 이민하는 사람이 가지고 갈 수 있는 짐은 저 쬐끄만 사이즈의 가방이 전부였다고 한다.

박물관을 나와 이동하다가 발견한 서점이다. 그래픽디자인에 대한 재밌어 보이는 책들이 많았다.

Berlin Story Bunker & Anhalter Bahnhof

베를린 스토리 벙커는 히틀러 정부 주둔지인 Anhalter Bahnhof에 3500명의 민간인을 수용하기 위해 지어졌다. 2차세계대전 이후 독일의 많은 방폭 구조물들이 철거되었지만 여기는 2014년에 베를린 스토리 벙커로 개조되었다. 그래서 전시장에도 으스스한 텍스쳐의 콘크리트 벽이 그대로 남아 있고 보존을 위해 벙커 내부 사진을 찍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

  1. 외부 모습
  2. 입장료는 오디오 가이드를 포함해 학생할인 9유로다. 저 무전기 같이 생긴 플레이어와 헤드폰을 빌려준다. 오디오 가이드를 필수로 포함시킨 것은 전시가 길고 정보량이 많이 때문에 오디오 가이드의 요약이 필요해서인 것 같다.
  3. 본전시 이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관련 밈 전시가 있었다. 너무 피곤해서 제대로 못 보고 나왔다.

히틀러에 대해 매우 샅샅히 알 수 있다. 전시의 초반부가 히틀러의 출생부터 예술에 심취했던 학창시절과 거듭된 예술학교들의 거절, 1차대전 참전, 그리고 어쩌다가 반유대 사상을 갖게 되었고 나치당의 리더가 되고 선동가, 학살자가 됐는지를 다루고 있다. 당시의 독일의 경제상황과 사람들이 전쟁에 부여했던 의미 등 엄청 풍부한 설명이 제공된다. 이 부분이 재밌어서 모든 텍스트를 꼼꼼히 읽고 오디오 가이드 들으면서 두 번씩 봤다. 그러고 나서 약간 피곤해져서 고개를 들어 보니까 ‘당신은 이 전시의 25%를 보셨습니다’라고 쓰여 있는 것이 아닌가. 두 눈을 의심했다. 그 후로 집중의 밀도를 조절해 가며 본 것 같다. 독일의 패배가 확정되자 히틀러가 자살하고 괴벨스가 총리직 계승해서 하루 일한 뒤 그 다음날 자살하고 괴벨스 아내까지 자식들을 전부 살해한 뒤 자살하는 충격적인 결말과 함께 전시가 끝이 난다.

전시 끝에 지하로 내려가면 벙커의 당시 모습이 거의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공간이 있다. 거기로 내려가는 계단의 표지판이 별로 눈에 안 띄어서 그런지, 다들 본전시 관람만으로 녹초가 되어서 건너뛰는 건지 사람이 몇 명밖에 없었다. 그들마저 나가서 나 혼자 벙커의 지하에 남겨진 채로 돌아다녔는데 진심 무서웠다. 바닥에는 당시 놓여 있었던 물건의 흔적들이 남아 있고, 무너진 벽의 잔해 뒤로 보이는 어두운 공간에서는 찬 바람이 불어왔다. 이런 크고 공허한 공간에 압사당할 것 같은 밀도로 사람들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는 게 소름끼쳤다.

전시 끝에 서점이 있는데 1유로에 파는 책들이 있었다. 그래서 Berlin Today라는 책을 건졌다.

Anhalter Bahnhof. 베를린 스토리 벙커를 보고 나서 보니까 감회가 새로웠다.

친구가 Too good to go라는 앱을 알려줬다. 낮 동안 미리 신청을 해 두면 영업 종료 전 남은 음식들을 싼 가격에 받아갈 수 있는 앱이다. 처음으로 호스텔 근처의 빵집을 신청해 보았다. 픽업 시간에 맞춰 호스텔 쪽으로 이동하면서 눈여겨봐 두었던 영어 서점들을 투어했다.

  1. She Said
  2. The Berlin Book Nook - 중고서점이다.

수확은 어마어마했다. Brezel Company라는 빵집이었다. 직원분이 빵을 담는 걸 보면서 ‘언제까지 담으시는 걸까’란 생각만 했다. 그리고 앞으로 3일 동안 이것을 들고 다니면서 빵만 먹을 운명에 처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베를린 S반 U반에서 특히 심하게 진동하곤 하는 꼬순내가 있다. 빵을 가지고 다니면서, 그 냄새가 빵냄새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냄새를 막기 위해 가방에 넣고 지퍼를 닫아서 보관했는데 나중에는 가방에까지 냄새가 뱄다.

Anti-Kriegs-Museum

이 날의 마지막 목적지는 반전박물관이다. 입장료는 무료이다. 여기는 1925년에 Ernst Friedrich가 세웠는데, 그 이후 수 차례의 파괴와 다른지역에 재설립되는 것을 반복했다. Ernst Friedrich가 죽고 15년 후에 그의 손자가 현재의 위치에 재설립했다.

작은 규모의 박물관이고, 들어오면 박물관의 역사에 대한 영상을 하나 보여준 뒤 자유롭게 보라고 한다. 스크랩과 수집품들에서 큰 박물관에는 잘 없는 한땀한땀 정성들인 느낌이 났다.

지하에 원폭 벙커를 재현해 놓았다.

좀 일찍 와서 씻고 카운터 앞 라운지 같은 데에 앉아서 폰 좀 하다가 들어가서 잤다. Grand Hostel에서 묵는 마지막 밤이었다.